✍️산문시
셋에서 늦는다
ㅡ청조 온기은
비트는 셈이 아니라 습관이다.
컴퓨터는 생각하지 않고 반복한다.
0과 1 사이에 감정은 없지만, 주기는 있다.
클럭은 시간을 생산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을 쪼갤 뿐이다.
그 조각들이 너무 규칙적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리듬이라 착각한다.
음악은 그 착각을 이용한다.
셋을 세게 만드는 건 균형이 아니라 불안이다.
하나에서 둘까지는 직선이지만, 셋째는 늘 살짝 늦거나 밀린다.
그래서 원은 닫히지 않고, 몸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흔들린다.
3박자는 안정이 아니라 계속 실패하는 구조다.
심장은 계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장 정확하다.
누구도 명령하지 않았고, 악보도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반복되는 소음.
너무 오래 지속되어서 생존이라 불리게 된 잡음.
심장은 박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음으로 의미를 강요한다.
비트라는 단어는 그래서 불편하다.
기계에게는 규칙이고, 음악에게는 약속이며,
몸에게는 협박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름을 쓰지만, 목적은 서로를 배반한다.
그럼에도 셋은 어딘가에서 겹친다.
지연되는 순간.
셋째 박자가 도착하기 직전의 공백.
완벽한 반복이 잠시 어긋나는 그 틈에서,
인간은 자신이 기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하나, 둘, 셋.
우리는 늘 셋에서 늦는다.
그 늦음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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